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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더십] 고졸 채용 붐 일으킨 조준희 IBK기업은행장
행원에서 시작해 은행장까지 - 시장통 지점으로 첫 출근… 일요일도 없이 일했던 시절 돌이켜 보면 가장 뿌듯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말라 - 기업에 대출 저울질하면서 '100% No' 라고는 하지 말라… 직원들에게도 신신당부
구닥다리 광고라 타박도 - 30년 생각했던 것 광고로… 진정성 있으면 성공한다
딸에게 보여줘서 다행

 송해씨와 아역탤런트 김유빈양이 등장하는 기업은행 광고. 3월 말 은행 전체 광고 인지도 조사에서 기업은행이 1등을 했다.
"청계 고가도로 없어진 것 말고는 30년 전과 똑같네. 자주 가던 다방도 그대로 있고…."

조준희 IBK기업은행 행장은 기업은행 청계 5가점(옛 방산시장점) 주변을 감개무량한 듯 한참 둘러봤다. 그는 1980년 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한 뒤 "취업할 곳이 많지 않아" 생각지도 않던 은행원이 됐고, 첫 근무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청계 5가점은 털실, 벽지, 장판가게가 몰려 있는 시장통 건물 2층에 숨은 듯이 자리 잡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점의 한 신참 남자 행원은 "저도 첫 출근날 30분이나 헤매다 간신히 찾아왔다"며 취재팀을 반겼다.

조 행장은 지난해 6월 10여년 만에 고졸 출신 여(女) 행원을 뽑기로 결정, 은행과 대기업에 고졸 채용 붐을 불러일으켰다. 전직 모 시중은행장 A씨는 기업은행의 고졸 사원 채용 소식을 실은 조선일보를 보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은행장일 때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경쟁사의 전 대표가 인정한 최고의 혁신 아이디어였던 셈이다. 조 행장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겸연쩍게 웃었다.

그는 '기업은행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거래할 수 있는 은행입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만들어 고객 저변을 넓히고, 중소기업 대출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서울대 경영대학원생 설문조사 결과 본받고 싶은 CEO 중 한 명으로도 꼽혔다. 그는 기업은행 50년 역사상 최초의 공채 출신 은행장이기도 하다.

조 행장은 지점에 들어서자마자 "저, 은행장입니다. 불편한 건 없으신지요"라며 고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청한 뒤에야 지점장실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북새통 같은 곳에 은행 지점이 있을 줄 몰랐다.

"30년 전에도 똑같았다. 매일 아침 30분 일찍 출근해 금고에 들어 있는 포댓자루에서 새 돈과 헌 돈을 분류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가고 싶은 부서를 적어 내라고 해서 1순위로 종로지점을 적고, 2순위는 아예 적지도 않았다. 그런데 당시 기업은행엔 종로지점이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방산시장점에 배치됐다. 여기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총각 때라 일요일에도 나와서 러닝, 팬티 바람으로 일하고 숙직하고 그랬다."

◇시장통 지점에서 은행원 생활 시작

―일요일에도 못 쉴 만큼 일이 많았나.

"일이 많았다기보다 찾아서 했다. 은행원 생활하며 가장 뿌듯했던 시절이다. 당시 독일 차관자금 대출 1~2호를 그때 내가 여기서 했다. 그게 일반 대출과 달라서 서류를 10종류나 꾸며야 했는데, 지점에선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틈만 나면 본점 외자부(外資部)에 가서 물어보고 애먹이고 그랬다. 그 공부 하려고 3개월 동안 밤마다 주말마다 일했다. 작년 신년사에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라는 말을 썼는데 30년 전 그때를 떠올리며 쓴 말이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한 말인데,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라는, 핑계만 대지 말고 개척하라는 뜻이다.

차관 서류작업 때문에 본점 직원들을 하도 괴롭히니까 누가 '방산지점에 희한한 놈이 있다'고 그랬나 봐. 그래서 1년 6개월 만에 본점 인사부로 스카우트돼 갔다."

―행원 시절 은행장까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나.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행원 때나 지금이나 늘 '생(生)을 일일 마감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아버지로부터 두 가지 인생 지침을 받았는데, 잔머리 굴리지 말고 앞만 보고 열심히 하라는 것.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도 피눈물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신신당부한다. 기업에 대출을 저울질하면서 절대 '100% 노(No)'라고는 말하지 말라고. 조건이 안 돼 원하는 만큼 대출을 해주기 어려울 때도 50%, 60% 가능한 만큼 최대한 도와주면서 고객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이 자신의 첫 근무지인 서울 청계 5가 지점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조 행장은 “총각 시절 휴일에도 출근해 속옷 바람으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인화를 위해 도입한 고졸 채용

―기업은행이 고졸(高卒) 채용 붐을 일으켰다. 그런 생각을 한 계기는?

"인사 담당 부행장 할 때 지점에 다녀 보니 문제가 있었다. 요즘은 입사 경쟁률이 100대 1이나 되는데, 정규직 채용에서 떨어진 대졸자가 나중에 계약직으로 들어와 일하고 있더라. 정규직 사원과 계약직 사원이 대학 동기인 경우도 있었다. 모든 조직은 인화가 기본인데, 이런 구조에선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고졸 채용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몇 년 전부터 추진했던 일이다. 작년 초에 서울여상 출신 2명을 시험 삼아 뽑았는데, 고객과 직원 반응이 좋아 확신을 갖고 작년에 67명을 뽑았다."

―은행에서 고졸 명맥이 왜 끊겼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제도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건데, 이게 고졸자들에게 은행 취업 문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상(女商) 출신이 대졸자와 같이 입사 경쟁을 해야 하는데 경쟁이 되겠나."

◇광고회사 다니는 딸에게 "구닥다리" 광고라는 소리 들어

―송해씨가 나오는 기업은행 광고가 히트를 쳤다.

"30년 은행 생활하면서 늘 자존심 상했던 게, 어디 가서 기업은행이라고 하면 잘 모르는 거였다. 같이 밥 먹는 사회 지도층 인사 중에서도 30% 정도는 기업은행을 기업만 거래하는 은행인 줄 안다.

집이 잠실이라 하루는 한강 불빛을 보고 있는데,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이 머릿속에서 섬광이 일었다.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라는 문구가 그때 떠올랐다. 그때부터 광고 문안을 완성하느라 두 달 동안 고민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서 20~30분 동안. 어떤 날은 한 줄도 못 쓰고 끙끙 앓기만 했다."(기업은행의 광고 문구는 '기업은행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거래할 수 있는 은행입니다.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 그리고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이다.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자기가 할 말을 죽 늘어놓는, 광고업계 용어로 '푸시(push)형' 광고다)

―딸이 광고회사에 다니지 않나.

"딸에게 내가 지은 광고 문구를 알려줬더니 '구닥다리 광고'라며 '광고계의 오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내기하자고 했다. '이 싸움에는 네가 아빠한테 져. 아빠는 30년을 고민하고 만든 거거든. 이런 거 성공 못하면 정의가 지는 거 아니냐. 너도 광고하지만 아빠만큼 회사를 생각하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했다. 우리 아이에게 상식에 벗어나더라도 진정성이 있으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천안함 견학을 시키고, 안동 도산서원 수련원에도 보내는데, 왜 충효를 강조하나.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다. 먼저 인간이 돼야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 나라가 있어야 조직이 있고, 조직이 있어야 개인도 있다는 의미에서 충. 부모를 섬기고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효가 기본이다. 이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이 많아져야 대한민국이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

―임원부터 행원까지 한 번에 인사(人事)하는 '원샷 인사'를 단행해 화제가 됐다.

"행원 시절부터 인사가 두 달씩 걸리는 걸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임원 인사하고 열흘 있다가 지점장 인사하고 지점장 인사 끝나면 또 그 아래 인사하고 그러다 보니 인사철만 되면 전 직원들의 마음이 딴 데 가 있었다. 이걸 반드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샷 인사는 최고경영자가 중심을 잡고 직을 걸고 과감하게 해야 가능하다."
Posted by i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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